- TBT 통보 건수 15년 새 4배 가까이 증가, 신흥국 진출 장벽 높아져
케냐에 연 200만 달러 규모로 에어컨을 수출해온 가정용 가전 제조업체 A社는 현지 에어컨 시장에서 상당한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며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2017년 케냐정부가 수입 에어컨의 에너지효율 실험온도를 열대지역 조건으로 개정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A社 제품 중 해당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한 제품들의 수출이 전면 금지된 것이다. 추후 현지 지원기관의 도움으로 애로를 해소할 수 있었지만, 무역기술규제 사전 대비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이처럼 최근 각국의 무역기술장벽이 높아짐에 따라 A社와 같이 물품 수출에 차질을 빚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나 기존에는 선진국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기술규제가 신흥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신흥국에까지 시장 진출의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 대두와 더불어 주요 수출국을 중심으로 늘어나는 무역기술장벽까지 겹치면서 우리 수출길이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3월 21일 ‘무역기술장벽(TBT) 동향과 대응과제’ 보고서를 통해 최근 무역기술규제의 동향과 특징을 분석하고 정책과제 및 대응책을 제시했다.
‘무역기술장벽(TBT, Technical Barriers to Trade)’이란 국가 간 서로 다른 기술규정과 표준 등으로 인해 무역에 장애가 발생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것으로, 대표적인 비관세장벽 중 하나다. UNCTAD가 지난해 밝힌 바에 따르면 비관세장벽이 야기하는 비용은 관세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TBT 통보건, 연평균 11% 증가로 매년 최대치 경신
WTO 협정에 따라 각 회원국은 ‘TBT 통보 의무’가 있다. 이는 WTO 회원국이 표준·기술규정·적합성 평가절차를 제·개정할 경우 동 개정안이 국제표준 내용과 상이하거나, 국제표준이 존재하지 않는데 무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경우 그 내용을 다른 WTO 회원국에 통보해야 하는 의무다.
또한 다른 WTO 회원국이 신규·개정 기술규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답변을 받을 수 있는 합리적인 기간을 허용할 의무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TBT 통보 건수는 1995년 WTO 출범 이후 연평균 11%씩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18년부터는 3년 연속 3,000건 이상의 기술장벽이 생겨나며 매년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최근 15년 새 전 세계 TBT 통보 건수는 3.7배 증가(2005년 897건 → 2020년 3,354건)했으며, 그중 우리의 10대 수출국 규제는 이보다 많은 5.2배(2005년 164건 → 2020년 849건) 늘었다.
WTO에 보고된 신규 TBT 통보문(누적기준)은 유해물질 사용제한 등 건강·안전 관련 사항이 1만 3,638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술규격 등 품질 관련 사항이 4,575건, 허위표시 등 소비자 보호 관련 건이 4,401건, 환경보호 3,444건 순이었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1,847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뒤이어 중국(1,460건), EU(1,360건), 이스라엘(1,230건), 우간다(1,227건) 순이었고, 우리나라는 9위(1,014건)를 차지했다. 우리의 수출 다변화 대상인 新남방지역(인도·ASEAN, 11개국)의 경우 1,866건으로 미국, 중국, EU를 앞섰다.
대한상의는 “미·중 무역분쟁이나 보호무역주의의 대두로 우리 기업들은 신흥국 등 수출시장 다변화가 절실하지만, 주요 수출국뿐만 아니라 개도국의 수출장벽마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라며, “건강과 안전 관련 규제가 많았던 만큼 정부가 무역기술규제 대응 지원을 적극 확대해야 한다”고 전했다.
○ 최근 TBT 동향 : 디지털 경제·환경 규제 확대, 신흥국 규제 증가, 신규 FTA 통한 규제 강화
보고서는 최근 TBT의 특징으로 ▲디지털·환경관련 규제 강화, ▲신흥국 규제 증가, ▲신규 FTA를 통한 규제 강화 등을 꼽았다.
EU 사이버보안법(2019년), 미국의 연방정보보안관리법(2014년), 중국의 네트워크안전법(2017년) 시행 등 최근 디지털·환경 관련 무역기술규제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특히 환경 관련 규제인 EU의 에코디자인 규정은 에너지효율뿐만 아니라 상품의 내구성·재생가능성을 평가하는 요건까지 향후 더해질 예정이고,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규정 등의 기술규제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신흥국의 TBT 건수 확대(2005년 65.1% → 2020년 75.6%) 현상도 최근 TBT의 특징으로 꼽았다. 2017년 저개발국의 TBT 신규 통보 건수는 이미 선진국을 넘어섰다. 신흥국은 자국의 산업육성과 소비자 안전보호 측면에서 TBT를 활용하고 있는데, 주요 신흥국들은 상대적으로 자동차 품목 규제가 많았고, 환경·보건 관련 규제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신규 FTA를 통해 TBT가 강화되고 있는 점도 최근의 흐름이다. 아시아·태평양 11개국이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서는 우리가 기존 FTA에서 포함하지 않았던 ‘기술기준’이 마련됐다. 주류는 제품 표기에 대한 라벨링, 부착 방식 등이 정해졌고, 화장품은 동물시험이 금지되거나 시판 허가절차가 없어졌다. 정보통신 분야는 특정 암호 및 알고리즘 요구를 금지하는 등 CPTPP 가입을 위해서는 무역기술규제 대비가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 국제표준 선도 및 협력 강화, TBT 영향 및 지원 효과 측정, 민·관 협력 강화 등으로 대응해야
보고서는 무역기술장벽에 기업들이 대응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위해 ▲TBT 신속 대응(통보문 안내에 WTO ‘e-Ping’, 국가기술표준원 ‘KnowTBT’ 등 서비스 활용), ▲TBT 컨설팅 및 규제대응 정부 지원 활용, ▲정부 기술협력사업 적극 참여, ▲기술규제 대응 전문인력 확보, ▲ESG 경영을 통한 글로벌 트렌드 변화 대비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정부 정책과제로 국제표준화 과정에 참여해 국제표준을 선도하고, 시장다변화에 대비해 개도국과의 기술표준 협력을 강화할 것을 제시했다.
또한 TBT 피해 수준, 중소기업 지원 등 정부 대응 성과를 수치화해 대응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부 지원의 양자 협력이나 FTA 위원회, WTO 위원회 등을 통한 애로 해결을 더욱 활성화하고, 최근 기술 동향을 파악해 선제적으로 기술규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한상의 우태희 상근부회장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메가 FTA 타결로 관세는 계속 낮아지는 반면 비관세장벽은 늘어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무역기술규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장벽”이라며, “보호무역주의가 늘어나는 지금 TBT 극복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수출 회복의 필수조건인 만큼 TBT 대응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출처 - cu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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